알프레드 마셜

경제학자의 아버지 중에서 가장 극성이었던 사람을 고르라면 누구나 밀의 아버지를 든다. 그러나 마셜의 아버지도 그에 못지않은 극성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들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그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엄청난 양의 공부를 강요했다. 공부에 찌든 그는 언제나 창백하고 피곤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초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은행원인 그ㅡ이 아버지는 그가 옥스퍼드 대학으로 진학해 목사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옥스퍼드의 장학금 제의를 뿌리치고 부유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진학하였다. 대학 시절의 그는 수학을 특히 즐겨 공부했으며, 우등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인 학생이었다. 그는 수학에서 두 가지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하나는 수학을 공부하지 못하도록 말린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동급생에게 수학 개인교습을 해주고 얻을 수 있던 다소간의 용돈이었다.

이처럼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던 그가 막상 책을 쓸 때는 수학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했다. 그는 모든 수학적 표현을 각주와 부록에 몰아넣고 본문은 거의 말과 그림으로 채우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경제학에서 수학이 갖는 의미가 단지 그것이 주는 편리함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경제학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경제학적 직관이지 결코 수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셜은 시장에서의 균형현상, 즉 수요와 공급의 힘이 맞아떨어져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특히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렇게 수요와 공급의 힘이 맞아떨어질 때 상품의 가격과 거래량이 일정한 수준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게 된다. 요즈음에는 경제학을 처음 배우는 사람도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의 교차점에서 균형이 성립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마셜의 시대에는 균형의 개념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만 하더라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마셜은 50여 년에 걸친 활동기간 동안 수많은 글을 써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경제학원리>로, 제9판까지 출판되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경제학에 끼친 그의 영향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경제학자를 길러낸 점에서 더 컸는지 모른다. 케인즈, 피구, 로빈슨, 로버트슨 등 그의 기라성 같은 제자들이 영국의 경제학 인명사전을 거의 독점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형성된 케임브리지학파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세계 경제학계의 흐름을 주도했다.

마셜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케인즈는 그를 가리켜 ‘위대한 경제학자’라고 불렀다. 단지 경제학에만 정통했던 것이 아니라, 수학, 역사학, 철학에 이르는 폭넓은 식견을 갖추고 있던 그를 위대한 경제학자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만능 선수로서의 자질을 케인즈 자신이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사실이다. 이 스승과 제자는 영국 경제학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스타들이었다.

전형적인 영국신사라고 할 수 있는 부드러운 풍모의 마셜이었지만 사회개혁의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열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경제학이 사람들의 경제적 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당시의 영국 사회에 아직도 빈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개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감정에만 사로잡혀서는 이 문제뿐 아니라 다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이 인식에서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라는 그 유명한 경제 기사도의 원칙이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과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지성을 모두 갖춘 경제학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이 말에서 우리는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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